저널 레프리 그리고 아마추어 과학자의 오해 물리 이야기

1. 인정받는 학술 저널들은 전문가에 의해 투고된 논문을 '판정'하는 절차를 거쳐 논문의 출판을 결정 짓는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에게 저널의 에디터들은 논문의 검토를 요청하고 또 전문가들이 시간을 내어준 것에 대해 해당 저널 혹은 관련 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일정기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검토 비용을 보내는 등 감사를 표현한다.

그리고 저널들은 충분한 시간을 전문가에게 주고 혹시 리뷰를 해 줄 수 있겠는지를 묻는 절차를 반드시 거친다. 전문가가 저널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 감지덕지 해야할 일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정 이상의 노력과 시간을 써야하는 부담을 지우는 일이니 비록 학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절차의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경우 학자들은 1급 저널의 레프리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꺼히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그 일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이것이 강제적이라거나 -만약 이 논문 리뷰를 하지 않으면 당신이 학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식이라면 그 누구도 그 저널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페리에 한 병을 걸겠다.

2. 블로그 때문에 가끔 나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메일을 받곤 한다. (사실 꽤 많이 받는다.)

내 블로그를 읽고 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 늘어나는 건 감사할 일이지만, 이 분들의 아이디어 -아인슈타인은 틀렸고,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늘어나고, 양자역학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시공간 요동이론으로 대체해야하며, 물리학자들은 편견이 많아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그 아이디어-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대해 일일히 답을 해야 내가 과학 문화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 분이 계시다면 그야말로 내 블로그의 성격을 오해한 거라고 밖에 말씀을 못드리겠다.

내가 블로그를 통해 과학 문화 정착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그것은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보다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고, 과학자인 내 스스로가 느끼고, 배우고, 이해하는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블로그 기사들을 써왔다고 생각한다.

3. 만약 진지하게 자신의 이론이 기존의 모든 과학자들이 놓친 부분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내 블로그가 아니라 저널에 투고하셔서 합당한 절차로 전문가 리뷰를 받으시길 권하고 싶다.

만약 과학자들이 틀렸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옳지만 '단지 수학 실력이 조금 모자라서' 저널에 투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가 틀렸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를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적어도 훈련받은 과학자들 모두가 틀렸을 가능성 보다는 아마추어인 자신이 잘 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러했듯 아마추어 한 명이 당대의 과학자들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신다면 아인슈타인은 훈련받은 이론물리학자이지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답을 드린다.

아인슈타인이 재수도 하고 공부도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인슈타인이 당대 최고수준의 학교중 하나인 취리히 공대에 입학한 해가 1896년이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가 태어난 해는 1879년이니 17세에 입학한 것이다.

4.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쓰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도 내 글을 통해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아! 아니다. 어느 독자를 만나 대단한 기부금을 받아 Simons 연구소나 캐나다의 Perimeter 연구소가 한국에도 탄생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

덧글

  • 운향목 2009/07/20 11:21 #

    마지막 두줄이 가슴을 울립니다..ㅜㅜ
  • 아일턴 2009/07/20 11:32 #

    3번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글루스 과학밸리에도 그런 분들이 꽤 되지요.

    마지막 두 줄은... 그거슨 머나먼 이상향...
  • 부전나비 2009/07/20 12:51 #

    마지막 두줄은 환상향에나....
    3번은 역시 동감합니다. 비단 아마추어 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격하는 창조론자들에게도 하고싶은 말이기도 하구요(...)
  • 별아저씨 2009/07/20 13:03 #

    아마추어라도 "과학"을 한다면 다행이지요. 그냥 바보라고 불러야.
  • 지구밖 2009/07/20 13:05 #

    과학 밸리 공지사항에라도 걸어두고 싶은 내용이네요..
  • 아롱이 2009/07/20 13:47 #

    아 그런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 제 약혼자의 꿈이죠!
    (아 갑자기 결혼해도 괜찮을까? 생각이 조금 들기는 하는군요;;;)
  • 운향목 2009/07/20 14:26 #

    저기 멀리서 미래에 돈깨지는 소리가...?!
  • 치호 2009/07/20 14:39 #

    류현진이 공 던지는 거 실제로 보면 얼어서 방망이도 못 휘두를 사람들이 과학자는 너무 우습게들 보죠.
    쏟아지는 메일들 때문에 노고가 많으실 듯;;;
  • 모모 2009/07/20 15:58 #

    페리에 맛 없어요[...]
  • 누렁별 2009/07/20 17:03 #

    연봉 1조원만 받으면 그깟 연구소 하나 쯤 문제도 아니겠습니다만... 그 연봉이 문제군요 orz
  • scheme 2009/07/20 17:05 #

    1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임의각의 3각분할에 도전해 오신 트라이섹터 최XX 선생; 같은 분이 물리쪽에도 많이 있나보네요.

  • 아일턴 2009/07/20 17:17 #

    그런분이 계십니까; ㅎㄷㄷㄷ
    세상은 넓고 용자는 많군요 ( --)a
  • 우기 2009/07/21 03:42 #

    예전에 저희 실험실에도 자신의 발견과 이론을 검토해달라며 자필로 A4 3-4장에 빼곡히 써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과 수식도 함께_ 분이 계셨습니다. 거의 매달 꾸준히 수년간.

    연세가 60은 훌쩍 넘으신 듯한 여자분이셨는데, 오실 때마다 받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저희가 무지한건지,
    아니면 그분이 자신만의 세상에 계신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과학계의 '환단고기 재야 민족 사학자' 같은 느낌이려나요.
  • phalaten 2009/07/21 16:56 #

    공지로 보내고 싶은 글입니다.
    문제는 그런 소위 '순수한' 목적의 아마추어 과학자는 문제가 아닌것 같지만
    국내에는 '과학 사기꾼'들이 판치는것 같아서 걱정이 듭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적 사기'의 장단에 춤추고 있는것도 사실이구요.
  • moonslake 2009/07/21 22:06 #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남들에게 증명하고 이를 검증받는 과정이 없다면 과학이라고 할 수 없지요.
    그렇게 정당한 근거들을 쌓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과학하는 사람으로써 더 바랄 것이 없지요.
  • 좌파논객 2009/07/21 23:32 #

    근데 살짝 곁다리적인 얘기를 하자면, 아인슈타인은 정규코스를 밟은 게 아니라 특허국에 근무하면서 짬짬이 연구하여 세상을 뒤집을 논문을 발표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훈련받은(자기가 자기를 훈련) 물리학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이죠...
  • ExtraD 2009/07/21 23:45 #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대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정규코스를 밟아서 정식으로 물리학자가 된 것이죠. 첫번째 직장이 특허국인 것은 사실입니다.
  • 꼬깔 2009/07/21 23:47 #

    저런...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ㅠ.ㅠ

    과학 밸리 공지사항에라도 걸어두고 싶은 내용이네요.. (2)
  • 초록불 2009/07/22 00:36 #

    적어도 훈련받은 과학자들 모두가 틀렸을 가능성 보다는 아마추어인 자신이 잘 못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생각은 아니다.

    과학자를 역사학자로 바꾸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죠. 과학계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숨)
  • 긁적 2009/07/22 01:38 #

    화이팅입니다. ^^/
  • 긁적 2009/07/22 01:38 #

    제가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군요. (아.; 제 분야가 과학은 아닙니다..;; 과학을 좋아하고 공대생이긴 합니다만 ㄱ-...)

    대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깨우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_tmp 2009/07/22 13:11 #

    바로 위에도 일종의 도시전설이 언급되지만, 어떤 의미로는 위인전이 사람 망치는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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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eqnarray} \hbar c =197.3 \text{MeV fm}\\ (\hbar c)^2=0.389 \rm{GeV}^2 \rm{mb}\\ 1.0{\rm pb}=\frac{2.568\times 10^{-3}}{\rm TeV^2}\\ =10^{-40} {\rm m}^2 \end{eqna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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