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입자물리학 물리 이야기


(*사진: 2009년 6월 코넬 뉴먼랩 320 한스 베테 연구실 모습. 오래된 가구들은 그대로 *)

예전에 누군가 "이론물리학 연구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분은 미생물을 연구하는 분이었다.

그러니까 특정 미생물의 특정 생리현상을 특정 화학물질과 물리적 환경을 이용해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연구를 하는 분이었고 (실제로 그 연구로 네이쳔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뭔가 연필과 노트로 과학을 연구한다는 그 행위 자체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엔 그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분차원이 어떻고, 힉스 질량이 어떻고. 그런데 그분은 정말로 "어떻게" 연구를 하냐, 즉 연구 방법에 대해 물어 본 것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어제 거트 고트프리드 교수님도 이야기를 했지만 "물리학은 근본적으로 경험과학"이고 따라서 순전히 노트와 연필에서 연구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 당장의 모습은 연필과 노트에서 연구가 시작되고 끝나는 것 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국엔 LHC, Pamela, WMAP 혹은 미래의 어느 실험 결과와 그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는 (된다고 믿는) 것이 이론물리학이다. 이 부분이 빠지면 실제로 물리학과 수학의 경계는 모호해질 것이다.

코넬 방문하는 동안 매일 두세시간씩 "블랙보드 토크"를 하고있다. 물론 혼자서 하는 건 아니고 지금 연구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해 챠바, 요하네스 등과 내가 머물고 있는 "한스 베테 연구실" Newman Lab 320에서 열심히 계산도 하고 왜 어제 내가 한 생각이 틀렸는지 혹은 챠바의 아이디어가 왜 작동할 수 없는지 혹은 요하네스의 메스매티카 코드가 왜 틀렸는지 열심히 증명을 하고 있다. 수없이 쌓여가는 틀린 아이디어들 속에서 딱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란 걸 누구나 알고 있고 그래서 쌓여가는 틀린 아이디어에 연민을 보이면서도 가차없이 "물리학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입자물리학의 모델 빌딩(model building)은 토론속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성공적인 모델 빌딩의 예는 표준 모형 그 자체일 것이다. 모든 기본 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얻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여 핵과 원자 분자 그리고 우리 우주를 만들어 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표준 모형"이라고 너무나 소박하게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지나친 겸손이다 싶을 정도로 와인버그-살람-글라쇼의 이론은 이제까지 모든 실험 결과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모형"이 제작된지도 30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실험 데이터의 더미속에서 찾아낸 진주같은 대칭성이 그 이론의 핵심인데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 입자물리학 분야의 대학원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외하곤 정말로 멋진 모습을 하고있다. 물론 그 아름다움을 직접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여전히 그 물리학의 off-spring을 기꺼히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노트북으로 와이어레스 랜으로 연결된 인터넷에 글을 작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있다. 설명의 화살표의 끝점을 늘려나가는 일은 늘 중요하다.

코넬 방문도 이제 거의 막바지다. 연일 계속되던 토론 속에서 아주 작은 불빛 하나를 발견한 것도 같다. 이 불빛이 진짜 인지는 역시 끝까지 가보지 않고는 모르겠지만.

일본행 비행기는 일요일에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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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z의 생각 2009/06/21 07:09 #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 입자물리학 분야의 대학원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외하곤 정말로 멋진 모습을 하고있다.' -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 이론물리학자들은 수학적으로 아름다우면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더니, 정말 엄청 큰 조건을 덜컥 제외하시네요. (웃음)... more

덧글

  • 모모 2009/06/21 01:34 # 답글

    자주 들러서 눈팅하고 있습니다.

    입자물리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물리를 배우다가 너무 어려워서 생물학으로 돌아선 사람 입장에서
    되게 재미있고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입맛 쩝쩝거릴 정도로 아쉬운(...) 이야기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 w4d3r 2009/06/21 10:12 # 삭제 답글

    이번에 군대서 휴가 나와서 그동안 못 봤던 글들 다 보고 갑니다.
    군대 가려고 맘 먹을때는 수리물리가 어려워서 였는데, 정작 군대 가니
    이렇게 물리가 그리울 수 없네요..이번에 ExtraD님 글들을 보니깐 더 간절해
    지는 군요..
  • 루이 2009/06/21 10:12 # 답글

    얼마 전에, 생물과 교수님 한 분이 수학과 교수님에게 "시험 채점할 때 편하실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셔서 나까지 화들짝 놀란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산수의 35+98=? 같은 문제들 채점하는 것만 생각하셨는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뛰어나도, 다른 분야의 트레이닝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 snowall 2009/06/21 14:28 # 삭제

    음...다른 의미로 편한 부분은 있을 겁니다. 제가 학부때 수학과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중간고사랑 기말고사 시험지의 대부분이 5문제중 많아야 1문제 정도 푼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당시 교수님은 아마 편하게 건너 뛰셨을 듯 싶어요.(그 학생들 중에 저도 있죠. 물론 -_-)
  • 모모 2009/06/21 17:30 #

    음, 아마 그 교수님은 이런 거 말하신 게 아닐까요.

    아무래도 수학 문제들은 답이 딱떨어지죠. 틀리면 틀렸다 맞으면 맞았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현상은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교수님이 틀렸다고 채점해도 학생이 claim 걸 수 있는 경우가 수학과보다 생물과가 훨씬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그래서 생물과에는 '난 claim 안 받겠다!'고 하시는 교수님도 많죠. 골치아프다고...]
  • 루이 2009/06/21 17:46 #

    제 말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표현이었나 봅니다. 어쨌든, snowall님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 하지만 모모님의 말씀은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아무래도 수학 문제들은 답이 딱떨어진다"는 말을 보니, 역시 "대학 수준의 수학"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계신듯 합니다.
  • 모모 2009/06/21 18:09 #

    음, 그런가요.

    대학 수준의 수학이라고 하면 기초과정만 듣고 생물과 전공으로 넘어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일수도 있겠네요;;
  • 키시야스 2009/06/23 06:17 #

    헐....루이님....생물학보다...수학이 채점하기 더 쉽습니다....

    수학은 일단 백지는 제끼고 채점하면 되거든요...

    생물은 장문의 소설도 읽어야 하지만요...ㅋㅋㅋㅋ
  • ExtraD 2009/06/23 07:04 #

    수학에도, 물리학에도 장문의 소설이 나온다는 것이 문제겠죠. 물론 백지가 나올 빈도가 좀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 우기 2009/06/21 14:35 # 답글

    저도 늘 궁금했던 건데 이제 어렴풋이 이해가 갑니다.^^

    제 분야와는 정말 다른 방식이네요.
  • 아일턴 2009/06/21 16:49 # 답글

    역시.. 물리학과 수학은 아이디어와의 싸움이네요.
    과학자는 오히려 상상력이 예술가 만큼이나 뛰어나야하는 거겠지요.
  • 2009/06/25 00:45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ExtraD 2009/06/25 05:23 #

    KC2008은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jpg로 정상적으로 컴파일이 된다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arXiv에 직접 문의하시는게 제일 안전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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