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에게 전문 과학자들의 논의보다는 아마추어의 센세이션이 더 큰 관심을 끄는 것 같다.
'입자 가속기'가 지구 종말 부른다? , 조선일보
9월 10일 스위스 현지시간 오전 9시 30분으로 공식 예정된 거대 강입자 가속기(The Large Hadron Collider, LHC)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가능성 중 하나인 '미니 블랙홀' 생성에 대해서 일부 아마추어들이 '둠스데이'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나선 일에 대해서 위 기사는 소개하고 있다. 만들어진 블랙홀이 주변의 물체를 잡아먹고 지구를 잡아먹는다는 상상은 분명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 블로그의 독자시라면 이것이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폐기된 논의이며 실제 지구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관련 포스팅 보기 )
아무튼 어떤 논의가 가장 확실하게 지구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여기서 핵심은 과연 고에너지 입자 충돌과정에서 생성된 '블랙홀이 안정할 것인가'이다. 만약 블랙홀의 수명이 충분히 길다면 (예를 들어 나노초 이상이라면) 뒤이어 날아온 입자들이 블랙홀과 충돌하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블랙홀은 더 큰 에너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블랙홀은 점점 커지게 되며 결국 지구 중심으로 가서 지구 전체를 삼킬 수 있게 된다. 블랙홀의 수명이 길면 길수록 위험도는 더욱 커진다.
과학자들은 블랙홀의 수명이 아주 긴 경우에 대해 고려해 보았다. 호킹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작은 블랙홀의 수명은 나노초에 비해서 10의 18승 배 이상 짧을 것이라고 예측되지만 (그래서 지구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지만), 대신 작은 블랙홀의 수명이 충분히 긴 경우가 과연 발생할 수 있는지 관측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 한 번 따져보자는 것이다. 만약 충분히 수명이 긴 경우가 관측적 사실과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호킹의 계산이 틀릴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안정성에 대해서 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경우가 관측사실로 부터 이미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지구의 안정성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호킹의 계산이 맞다는 간접적인 증거로 볼 수도 있겠다.
기본적으로 다음 두가지 논의가 물리학자들이 내놓은 지구의 안정성에 대한 답이다. 보다 자세한 계산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생략하고 기본적인 아이디어만 소개한다.
첫째, 지구로 날아드는 우주입자(cosmic ray)에 의해 블랙홀은 이미 생성되고 있다.
만약 LHC에서 미니 블랙홀이 생성된다면, 이미 우주입자와 대기중에 있는 공기 입자 충돌에 의해서도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미 대기에는 많은 블랙홀이 생성, 소멸을 거듭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지구는 이미 45억년 이상 안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미니 블랙홀이 소멸하지 않고, 주변의 물질을 잡아 먹는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에서 미니 블랙홀은 더욱 많이 생성되고 있다.
실상 지구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천체에서 우주입자에 의한 미니 블랙홀 생성 확률은 더욱 커진다. 단순히 생각해서 더 많은 입자들이 우주입자를 기다리고 있으며 따라서 더 큰 확률로 미니 블랙홀이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성자별과 백색왜성들이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니 블랙홀이 쉽게 소멸하며, 그 천체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한다.
그런데 조금 미묘한 문제가 있다. 중성자별이나 백색왜성 주변에는 강한 자기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우주 입자가 휘어져 나가 중성자별을 때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성자별의 경우 기가 가우스(10의 9승 가우스)에 달하는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전하를 띈 우주입자 (예를 들어 양성자)는 자기장에 의해 휘어져 만약 그 운동량이 충분히 크지 않다면 중성자별에 도달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얼마나 큰 운동량이 중성자별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될까?
가장 단순한 추산은 다음과 같다.
중성자별 표면에서 라모어 반경(Larmor radius)과 중성자별의 반경을 비교하는 것. 만약 라모어 반경이 더 크다면 중성자별의 자기장의 효과로 휘어지는 정도가 작다는 이야기가 되며 따라서 우주입자는 중성자별을 때리게 된다. 그 결과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
라모어 반경 혹은 자이로레디어스(Gyroradius)는 자기장 속을 헤쳐나가는 전하를 띈 입자의 궤적의 반경으로, 전자기학을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다.
r (Larmor) = p/ (q B)
여기서 p는 운동량, q는 전하, B는 자기장의 세기. 따라서 라모어 반경이 중성자별 반경 보다 크다는 조건으로 부터 다음 조건을 읽을 수 있다.
p > q B r
자기장의 세기가 기가 가우스, 중성자별의 반경을 10 km로 대입하면 우변은 대략 10^18 eV 정도가 된다. 즉, 10^9 GeV 이상되는 우주선 입자에게 중성자별의 자기장은 실상 '별 것 아닌 것'이다. 중성자별을 이루고 있는 핵입자가 1 GeV 정도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우주선 입자와 충돌 에너지는 대략 10 TeV 이상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에너지 대역은 LHC의 입자 충돌 에너지인 14 TeV와 거의 비슷하다. 즉, 중성자별 표면에서 LHC 실험이 이미 수십억년 이상 진행 중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중성자별은 여전히 미니 블랙홀에 먹히지 않고 우리에게 관측되고 있다.
이상의 논의는 충분히 '이론과 독립적인 (theory independent)' 논의로 설사 호킹 박사의 계산과 고차원 블랙홀에 대한 최근의 계산이 틀렸다고 해도 지구의 안정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중성자별에 대한 논의는 대만에서 저녁 식사중 히토시 무라야마 교수와 논의 도중 나온 것으로, 최근 논문에서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see e.g., Peskin's APS article on the safety issue of the LHC)
**세줄 요약**
1. LHC에서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져 지구가 먹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2. 우주입자들이 지구 대기권,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을 때려 이미 수십억년 동안 블랙홀을 만들어왔지만 멀쩡하다.
3. LHC는 안전하니 쓸데없는 걱정 마시라!
1. LHC에서 미니 블랙홀이 만들어져 지구가 먹힐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2. 우주입자들이 지구 대기권,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을 때려 이미 수십억년 동안 블랙홀을 만들어왔지만 멀쩡하다.
3. LHC는 안전하니 쓸데없는 걱정 마시라!
덧글
아마 http://indico.cern.ch/conferenceDisplay.py?confId=39099에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관련 포스팅을 하나 했습니다.
혹시 사진 찍으신거 있으면 좀 보내주세요~
이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이 와닿네요. 이런 실험 계속 하려면 일반인들에게 실험의 의의에 대해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오후에 일찍 자리를 떠야해서..
암튼 감사합니다.
조금더 전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진공'과 블랙홀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공'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요, 보통 교과서의 설명이라면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쌍생성된 입자가 블랙홀로 삼켜지는 확률보다 밖으로 나가는 확률이 미세하게 크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호킹 복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