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힉스 입자에 가장 멋진 이름 '신의 입자'를 붙여준 사나이 레온 레더만(Leon Lederman)의 86 번째 생신을 축하합니다. (이 소식은 TRF에서 알게 되었어요)
레더만은 '겨우 존재하는' 중성미자가 적어도 2개라는 것을 뮤온 중성미자 검출을 통해 보여주었고, 자연계에서 반전성(parity)이 깨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아한 실험을 두번째로 성공시켰으며 (첫번째는 마담 'Wu'), 페르미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미국 대륙에서 페르미온들이 발견되는 것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페르미온은 미국에서, 보존은 유럽에서 발견되었답니다.) 한마디로 20세기 최고의 실험 입자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느 업적에 노벨상을 줄 것인지 선정 위원회가 고민한 나머지 1988년에야 상이 수여되었다는 그의 농담이 완전 엉뚱한 소리는 아니에요. :-)
그는 뛰어난 물리학자임과 동시에 과학 교육에 대해 큰 열정을 가진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물리 먼저 배우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미국내 과학 교육 시스템에서 9학년부터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순으로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합당하지 않으며 물리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없이 원자와 분자에 대해 배우게 되면 화학은 자연스레 암기과목이 되어 버리고 수없이 많은 유기물, 무기물의 화학적 성질의 파도 속을 헤쳐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화학 작용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없이 생명현상에 대해 배우게 되면 19세기 분류학 수준에 머물기 쉬우며 결국 또 암기과목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논리 없이 외우는 능력만을 잔뜩 요구하는 과학은 그야말로 '이해하기 힘든' 과목이 되어 버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영 모른채 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과학을 수년간 배웠지만 여전히 혈액형 연애점 따위를 믿는 어설픈 지적 구조를 가진 젊은이들이 배회하는 도시의 거리를 생각해보세요.
과학에는 엄연히 설명의 화살이 존재하고, 그 방향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물리학을 만나게 된다는 기본적인 '과학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학은 이런 저런 관찰 사실들의 랜덤한 조합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과학 교육에서도 우려스럽게도 물리없이 '생물만 배우기' 혹은 '화학만 배우기' 가 소위 입시 명문 학교들에서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한 수학없이도 외기만 하는 과목들이 학생들이 점수를 따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그런 일이 편법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 정말로 화학과 생물학은 암기과목으로 전락하고 정작 배워야할 과학의 논리구조는 영영 배우지 못한채 이해없이, 외기만해서 점수를 따는 것이 과학과목이라는 인상을 학생들에게 주고 마는 것은 정말 개탄스런 일입니다.
저는 이공계 위기의 깊은 곳에 과학 교육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암기만하는 과학을 당연히 싫어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자라나 성년이 되었을 때 과학의 가치를 새삼스레 이해하리라는 기대는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과학교육에도 '물리 먼저 배우기'의 정신이 수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학교들은 물리,화학,생물,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목들은 과학의 논리 구조 속에서 제대로 편성되어 교육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물리학 뿐 아니라 화학 그리고 생물학과 지구과학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과목'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덧글
2008/07/16 00:2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traD 2008/07/16 00:30 #
왜 '주기율'이 생기는지 이해하면 외는 행위에 의미가 생겨요. ^^
Neutron 2008/07/16 04:05 # 답글
글을 읽어보니 "물리 먼저 배우기"가 당연한 순서군요...돌이켜보면 고교1학년떄 젤먼저배우던 과학1이 생물과 지구과학이었는데...
정말 외우기 힘들어 고생했던 기억이...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니 암기를 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ExtraD 2008/07/16 09:52 #
많은 학생들이 과학과목을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왜냐면 그렇게 가르치니까요.
화학 지식이 없이 광합성의 회로를 외는 건 정말 'random memorization'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이걸 달달 외는 학생이 과연 생명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높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Channy 2008/07/16 11:51 # 삭제 답글
저는 학부에서 지질학 전공이지만 물리학을 부전공 했었습니다. 그 당시 1학년 1학기 일반 물리 시간이 학부 기간 전체에 많은 도움을 주었더랬죠. 물리학을 먼저 배우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이슈라고 봅니다.물리 법칙과 원리도 매우 이해하기 쉽고 이를 심화해서 생물, 화학, 지구과학을 배우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차라리 현대 물리를 뺀 역학 같은 기초 물리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쳐도 될 것 같습니다. 분수와 등식만 나오고 상호 관계만 이해하면 되니까요. 바람은 왜 부나? 바닷물은 왜 치나 이런 기초적은 질문에 답변을 줄 수 있거든요.
ExtraD 2008/07/16 12:13 #
역학의 기초개념을 초등학생에게 전달하는 문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요, 아마도 이미 교육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문제는 교사가 물리학의 기본개념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건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할 부분이 많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물리학계가 노력해야할 부분이고, 이 노력에 대해 대학 뿐 아니라, 초등, 중등 교육계에서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olarnara 2008/07/16 13:18 # 삭제 답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생각입니다. 의문이 하나 드는 건, 물리/화학/생물학을 다 배우고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하고 돌아보면 물리->화학->생물학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파악하기 쉬운데, 처음부터 그 흐름을 이해하기 쉬울까 하는 것입니다. 미국 기준으로 9학년부터인데, 그렇게 이상적으로 될 것 같진 않아요. 지나친 걱정일까요? ^^;;
ExtraD 2008/07/16 17:06 #
물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고, 실제로 과학 교육에도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물론 현실적인 문제점들이야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Leonardo 2008/07/16 18:18 # 답글
목적으로만 하는 과학이 아니라 좀더 실질적이고 알만하게 잘 가르치면 좋겠네요.(제발 그거 배워서 어디 써먹어 란 말좀 안들었으면 좋겠어요)
ExtraD 2008/07/16 21:36 #
'알만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물리 먼저 배우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그런데 '실질적'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건가요?
quantum 2008/07/17 05:06 # 답글
글쎄요.. 아무래도 물리학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지적 발달 수준이 높지 않으면 가르치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만약에 논리적인 순서로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면 물리학, 수학 이외의 모든 과목은 가르칠 시점이 없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지구과학에서 고기압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나온다(북반구에서)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코리올리 힘을 설명 해야 하는데 이게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교 2학년 수준의 고전역학을 배워야 하니까요. 물리학이 모든 과학의 근원이 되기는 하지만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에도 각각의 '논리적'인 체계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굳이 물리학을 먼저 가르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ExtraD 2008/07/17 13:51 #
물리학이 근원이지만 어렵기 때문에 나중에 가르쳐야한다는 말씀이신가요?동의하기 어렵네요.
주기율표에 양자역학 이외의 어떤 '화학만의 독자적 논리적 체계'가 존재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명백한 논리적 구조를 따르지 않고 과학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봐요.
물론 방법론적으로는 랜덤한 현상들에 대해 각각에 맞는의 설명을 시도해보는 것도 무의미 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unification' 이라는 큰 틀 속에서 뉴튼 이후 과학이 발전해왔다는 것을 quantum님도 잘 인식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물리학의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 교육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논리없이 외도록 하는 과목을 더 지루하고, 더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quantum님도 그러셨겠죠?
ExtraD 2008/07/17 13:54 #
저도 현실적으로 물리 먼저 가르치는 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레더만의 운동에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quantum 2008/07/17 14:47 # 답글
저도 외우는 것 무척이나 싫어했고 그것이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되었지요. 하지만, 물리학 이외에는 논리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습니다.화학에 양자역학 이외의 논리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구요. 양자역학은 화학에서는 '근본 이론'이기는 합니다. 모든 것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부터 연역하는 것은 물리학자로써 갖고 있는 제 꿈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이 중고등학생에게 교육이 '필요한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공을 던졌을 때에 날아가는 궤적을 알기 위해서 양자 중력을 알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소위 '유효장론'의 개념은 입자물리학을 벗어나도 의미가 있구요. 우리가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면서 항상 끈이론에서 부터 연역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화학, 생물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양자장론을 알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궁극적인 설명을 찾기 위해서 물리학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화학, 생물학에도 (심지어 무작정 외우는 것으로 보이는 유기화학도 논리가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에게는 충분치 않아 보이지만...) '유효이론' 레벨의 설명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는 '유효이론' 정도의 논리조차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교과서나 교사의 자질이지 물리를 먼저 가르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단지 물리를 먼저 가르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제가 학교 다닐때에도 물리학은 거의 암기과목에 준하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을 별로 안좋아했죠. 논리적 사고의 훈련은 각각의 '유효이론'에서 부터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교육방법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잘못하면 근본 법칙을 발견하고 연구하는게 의미가 없다(러플린이 그런것 처럼)고 오독이 될 것 같아서 한마디 더 하면.. 전 각각의 고유 영역을 충분히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지 통일적인 기술 방법을 찾는 물리학의 방법이 의미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훨씬 더 깊은 이해를 가져오는 이러한 연구가 중요하죠.
ExtraD 2008/07/17 16:23 # 삭제
1. 주기율표를 이해하기 위해 (가르치기 위해) 양자역학 보다 더 잘 작동하는 혹은 양자역학과 동등한 수준의 '유효이론'이 화학에 존재한다고 보시지는 않겠죠?2. 저도 '단지' 물리를 먼저 가르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물리를 먼저 가르치는 것으로 지구과학의 행성 운동 문제, 화학의 주기율표 등에 대해 외는 것 이상의 이해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리라 생각합니다.
3. 근본 법칙 연구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계시리라 저도 믿습니다. 저도 고유 영역의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ExtraD 2008/07/17 16:28 # 삭제 답글
아참. 그런데 '외는 것'을 폄하하고픈 맘은 없어요.어느 단계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할 내용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과학 교육에선 좀 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는 것이 제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물리먼저'만 답이라곤 당연히(!)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점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