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물리 이야기

이번 포스팅은 우주론의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인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대해 한 번 맘먹고 쉽게 써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비전공 독자분들도 꼭 도전해 보시길.

빅뱅 이후 우주 초기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 우주는 심각한 "Exponential 팽창"을 경험했다는 것이 속속 관측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엑스포넨셜 (Exponential) 팽창"은 물리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데 지수함수가 어떤 폴리노미알 함수 보다도 결국 빠르게 커지기 때문에 일상 용어로 '엄청 빠르게' 팽창했다는 뜻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위 그림은 Exp[x]와 x^2 이 어떻게 커지는 지 Mathematica 6.0으로 그려본 것입니다. 처음엔 x^2도 꽤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Exp[x]가 점점 더 빨리 커지더니 x=5 근처에선 이미 보이지도 않게 커져버리는 군요.

우리 우주는 흥미롭게도 이 엑스포넨셜 팽창 시기 (이 시기를 인플레이션 시기라고 불러요)에 x=60 이상으로 커져버렸다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억의 1억배의 1억배의 100배 커졌다는 말이죠. 과연 엄청나게 큰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급속 팽창 시기를 지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빅뱅으로 생각되는 시공간의 특이점에 접근한 microscopic한 물리 현상 (예를 들어 초끈이론 등으로 기술 되는 양자중력적 현상)의 흔적을 완전히 묽게 만들어 (dilute)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해 보세요. 금가루 한 봉지(1g)와 분필가루 한 봉지(1g)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루들을 각각 1억의 1억배의 1억배의 100배 만큼 물에 타서 희석 시킵니다. 이제 과연 어느 쪽이 금가루가 들어간 물이고 어느 쪽이 분필가루가 들어간 물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불가능에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가깝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정확히 같은 일이 우주 초기에 발생해버렸고 우리는 인플레이션 이전의 정보를 거의 전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주 초기에 많이 존재했을지도 모를 자기단극자(magnetic monopole)를 수십년 이상 정밀한 검출기를 가져다 놓고 기다려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인거죠.

이제 '엑스포넨셜리 증가 하잖아!'라는 말을 써먹어 보세요. 초기 우주의 인플레이션을 떠올리면서요.

(예)
"난 밤 10시 이후엔 졸음도가 엑스포넨셜리 증가해. 너무 졸려."


둘째로 우리가 기억할 사항은 인플레이션은 우리 우주가 왜 이렇게 균질하고(homogeneous), 등방적인지 (isometric)에 대한 답도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밤하늘을 보면 달과 별들이 보이고 전혀 등방적이지 않은 것 처럼 느껴집니다. 계절마다 별자리도 다 다르고 말이죠.

하지만 관측의 범위를 넓혀서 보면 우리 우주는 놀랍게 균질합니다. 실제 WMAP 등 우주의 '배경 복사'를 관측한 실험 데이터를 보면 우리 우주의 온도는 절대 온도 2.7K로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아도 10만분의 1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말로 똑 같이 생겼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이미 눈치채신 독자님들이 계시겠죠?

그렇습니다. 아무리 처음에 치마에 주름을 주어봤자 그것을 1억의 1억배의 1억배의 백배 만큼 늘려버리면 그 주름의 흔적이 없어지고 어디를 보아도 평평한 모습의 단조로운 (하지만 거대한) 치마를 볼 수 밖에 없듯 우리 우주 초기에 있었던 양자역학적 요동들도 깨끗하게 다림질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인플레이션은 우리 우주를 "re-set"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위 그림에서 처음에 하얗게 빛나는 부분 (big bang) 직후에 갑자기 볼록하게 커진 우주가 보이시죠? 바로 이 시기가 인플레이션 시기 입니다.

과학자들이 그래서 초기 데이터를 얻는 것을 포기했을까요?

답은..

아닙니다!

인플레이션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초기 우주의 물리학적 정보들이 남아 있거든요.

첫째, 초기 요동 중 일부는 우주 팽창 시기를 거치는 동안 사라지지 않고 결국 별과 은하 그리고 인간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소위 우주 거대 구조 (large scale structure)의 씨앗이 만들어 진게 이때인 것으로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론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양자장이론과 끈이론 등을 총 동원하여 '인플레이션 모형'을 만들고 이들이 관측과 어떻게 맞아 떨어지는지를 살펴보는 일을 통해 초기 우주의 흔적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주 배경복사의 섭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플레이션을 유도한 입자의 포텐셜이 어떤 모양을 띄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포텐셜 함수의 높이와 기울기 등 정보가 우주배경복사에 들어 있거든요.

그런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제 블로그에 찾아오시는 몇 몇 분은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우주배경복사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계신 현역 과학자랍니다.

덧글

  • 2008/01/18 17:2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01/18 19: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총천연색 2008/01/18 20:28 #

    아 물리에 대한 향학열이 엑스포넨셜리 증가했어요.

    'ㅁ' 전 제목이 인플레이션이라길래
    extrad님이 경제학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시려나 싶었는데...
    빅뱅 이후 확장에 관한 이야기셨군요! 하하핫.

    후우 과학자님들 파이팅!
    저는.. 저는... 나름대로 파이팅. ;ㅁ;
  • 가고일 2008/01/18 20:54 #

    교양과학도서에서도 꽤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라 익숙한 용어이긴 합니다.
    모 도서에서는 진짜로 이 엑스포넨셜리를 갖가지 작은우주가 지폐가 마구 찍히듯이 찍혀나와서 '인플레이션'이 되는 것에 비유하더군요.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08/01/18 23:18 #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한 10년전 어느 책에서 접할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좀더 제대로 된 설명을 듣는군요^^
  • 아즈 2008/01/19 00:28 # 삭제

    그런데 우주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얼마나 되고,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주로 천문학 쪽에 계시는 분들이 인플레이션 및 그 후의 우주를 많이 연구하시는 것 같던데요..
  • ExtraD 2008/01/19 08:35 #

    비밀덧글1/ ok

    비밀덧글2/ arxiv.org 는 제가 매일 가는 곳입니다.
  • ExtraD 2008/01/19 08:38 #

    총천연색, 가고일, 사바욘/

    경제학에서 통화가치가 엑스포넨셜리 떨어지는 현상을 통화-인플레이션 이라고 부르죠. ^^
  • ExtraD 2008/01/19 08:45 #

    아즈/

    우주론은 천문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니 관련 연구를 하는 천문학자도 물리학자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몇 몇 대학들과 고등과학원에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모르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 ExtraD 2008/01/19 08:47 #

    (물론 외국에 계신 한국인 우주론 연구자들도 계시구요. 저와 공동 연구를 하시는 분도 계시고. ^^)
  • lshlj 2008/01/19 21:04 #

    최근에 읽고 있는 'The Fabric of the Cosmos'에서 얼마전에 읽은 내용이네요. 여기에서 이렇게 복습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
  • 꽃선군 2008/01/20 02:14 #

    재수생이 이해하기엔.. 난해함이 엑스포넨셜리 증가하는 군요.

    그저..(머엉)...........
  • ExtraD 2008/01/21 14:18 #

    lshlj/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을 읽으셨군요~

    꽃선군/ 이 글도 난해하다고 하시니 난감함이 엑스포넨셜리 증가해요. ^^;
  • dawnsea 2008/01/23 09:53 # 삭제

    예전에 과학잡지에서 본 기억에는...

    인플레이션 연구 초기에는 빅뱅 다음 인플레이션이다 라고 했던 것 같고... 나중에는 인플레이션 다음에 빅뱅이 맞다.. 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맞나요? -_-?;;


    간만에 저도 읽을 수 있는 글을 발견하여 기쁩니다 ㅠ.ㅠ
    (잘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_-)
  • 다음엇지 2008/01/24 17:25 #

    인간이 현재 살면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겠지요. 한 천억년쯤 뒤 지구상에서 본 밤하늘은 얼마나 삭막하고 황량하겠습니까. ^^
  • kirrie 2008/08/04 23:37 # 삭제

    댓글 단다 하다가 이제야 기억이 나서...

    이 포스트 유심히 보고 기억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미국 드라마 보던 중에 'exponentially'가 튀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종종 쓰이는 표현인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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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s

\begin{eqnarray} \hbar c =197.3 \text{MeV fm}\\ (\hbar c)^2=0.389 \rm{GeV}^2 \rm{mb}\\ 1.0{\rm pb}=\frac{2.568\times 10^{-3}}{\rm TeV^2}\\ =10^{-40} {\rm m}^2 \end{eqna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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