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 (Grigori Yakovlevich Perelman , 13 June 1966생)은 세 편의 논문을 인터넷에 발표했습니다. 그가 논문을 발표한 사이트는 이론물리학자들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저널에 발표하기 전에 미리 공개하는 곳으로 "아카이브 (arXiv)" 라고 흔히 부르는 곳입니다. 누구나 최신 연구 결과들을 접할 수 있고, 쉽게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기에 어떻게 보면 기존의 저널들 보다 아카이브 자체가 더욱 중요한 학문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몇 달 전에 아카이브에 발표한 논문이 저널에 실려서 나올 때 쯤이면 이미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학자들이 아카이브를 매일 방문하여 연구논문 목록들을 살펴보는 건 이미 일상화 되어 있답니다.
일단 페렐만의 세 논문의 원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쉽게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Preprints of Grisha Perelman's papers at arXiv.org:
- The entropy formula for the Ricci flow and its geometric applications, 2002–2006
- Ricci flow with surgery on three-manifolds, 2003–2006
- Finite extinction time for the solutions to the Ricci flow on certain three-manifolds, 2003–2006
이 논문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1980년대 초반 컬럼비아 대학교의 해밀턴(Richard Hamilton)이 제시한 리치 흐름(Ricci Flow)이라는 수학적 방정식을 이용하여 코넬 대학교의 수학자 Thurston의 기하학화 가설 (Thurston's geometrization conjecture)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밀턴이 제시한 리치 흐름은 사실 입자물리학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Renormalization Group(RG) 방정식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데요, 공간의 길이를 기술해주는 기하학적인 량, 소위 메트릭(Metric)이라고 불리는 양이 기하하적 대상의 스케일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이 리치 텐서(Ricci Tensor)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페렐만은 그 논문을 발표한 후, 미국의 몇 대학에서 세미나 투어를 한 후 러시아로 돌아갔는데요, 그 이후로는 세미나 초대에 더 이상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 뉴욕 타임즈에 실린 아래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03년 이후 그가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1990년대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St. 피터스버그의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은둔한 거죠.
Elusive Proof, Elusive Prover: A New Mathematical Mystery, NYT Aug 15
그가 왜 뉴욕타임즈의 주목을 받느냐 하면 바로 Thurston의 가설이 증명되면, 그 결과로 지난 1904년 이후로 수학계의 가장 큰 난제의 하나로 여겨졌던 포앙카레의 가설 (Poincaré's Conjecture)마져 완전히 풀리기 때문입니다.
포앙카레의 가설은 아래와 같습니다.
Conjecture: Poincaré
Every simply connected closed three-manifold is homeomorphic to the three-sphere.
Every simply connected closed three-manifold is homeomorphic to the three-sphere.
좀 더 쉽게 설명해 보자면, "임의의 고리를 만들어서 그 고리의 크기를 점점 작게 만들었을 경우에 한 점으로 줄어들 수 있는 크기가 유한한 도형은 구(sphere)다" 라는 건데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공을 하나 가져오고 실로 작은 고리를 만들어 공위에 놓아봅니다. 그리고 그 실을 작게 줄어들게 합니다. 결국 공위의 어디에 실로 만든 고리를 놓더라도 결국 점으로 수렴해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텐데요, 만약 공이 아니라 도넛이라면 도넛의 고리에 묶여진 실은 점으로 수렴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포앙카레의 가설은 바로 공만이 실을 점으로 수렴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위상학적 도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위 가설은 임의의 차원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데요, 5차원 이상인 경우에 위 가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 공로로 Stephen Smale이 1960년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Fields Medal)을 받았고, 1983년에는 이 가설이 4차원일 경우에도 성립한다는 것을 보인 공로로 Michael Freedman이 필즈 메달을 받았습니다. 1차원과 2차원의 경우에는 아마 이 글을 보고계신 독자분들도 쉽게 증명할 수 있으실텐데요, H. 포앙카레의 원 가설인 3차원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으나 이제 페렐만에 의해 풀린 셈입니다.
문제는 100만 달러의 Clay 재단 상금이 걸려있고, 또 다음주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수학회에서 필즈메달을 받을 것이 확실시 되는 페렐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천재 수학자가 경이적인 업적을 만들어 내고 사라져버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페렐만은 그가 16세, 당시 St. 피터스버그의 고등학교 재학시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만점을 받아 금메달을 받는 것으로 처음 수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명예나 물질적인 풍요에 대해 대단히 무관심하여 심지어는 수년전 유럽 수학회에서 수여하는 '젊은 수학자 상'을 거부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가 과연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수상의 기회가 있으며, 어찌보면 노벨상 보다도 명예로울 필즈 메달마져 거부하고, 아름다운 숲속에서 버섯을 따는 생활을 즐기며 자신만의 수학문제에 몰두할 것인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Come on, Man~!
덧글
에도 기사가 나왔습니다. 동아사이언스
젊은 수학자 상도 거부했고, 스탠포드와 프린스턴의 교수직도 거부했더군요.
말 그대로 세상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탈속한 사람입니다.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trivial한 사실인 듯 하지만, 오랜 노력끝에 완전히 풀어낸 인류의 지성에 다시 한 번 감동 먹었어요. ^^
**DK님, 논문은 전에 알고있었지만 뉴욕타임즈 기사를 보고 포스팅 한 것이었습니다.
**Lysander님, -_-;;
**Kristine님, 글은 읽으셨나요? -_-;;
http://www.chosun.com/international/news/200608/200608200215.html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