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이야기다. 리자 랜덜이 그녀의 책을 영국에서 먼저 발매했고 프로모션을 위한 투어중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우연히 그 프로그램의 녹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좀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은 그 주에 발매된 책들중 주목할 신간을 쓴 저자들이었는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예를 들어 [현대 미술의 인식론], [종교와 상대주의] 등을 쓴 사람들이었다.
리자는 최근 물리학의 발전에서 어떻게 extra dimension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것이 구체적인 입자물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게 되었는지 등을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현대 미술 ..]의 저자는 사실 현대 미술에서도 extra dimension과 상대성 이론이 나타나며 시각적 인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종교..]의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다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는 것이 현대 종교 논쟁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팩터임을 말하면서, 사실 자기는 우주의 존재 자체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했다. 음..솔직히 말해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받은 인상을 토대로 그들이 했던 혹은 했음직한 말들을 위에 나열해 보았다. (혹시 두 책 중 한 권 혹은 두 권 모두를 읽어보신 분이 계시면 내용을 상기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받은 인상이 바로 이거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예를 들어, 리자가 언급한 extra dimension은 매우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다. 입자가 운동량을 가지고 그 방향의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차원이다. 더 나아가 크기와 위상학적 구조에 의해 각기 다른 물리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구조를 파악할 수도 있을 (물론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원리적으로 관측 가능한) 그러한 물리적 실체이다. 그리고 그 대상의 성질에 대한 언급들은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수학적 정합성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만약 논리성과 정합성을 잃게 된다면 그 언급은 틀렸거나, 아니면 적어도 과학적 지식의 범주에 속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기본적 모랄이다.
하지만 [현대 미술..]의 저자나, 아인슈타인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 바탕을 둔 언급을 한 [종교..]의 저자는 extra dimension과 relativity가 주는 감성적 인상 - 적어도 논리적, 수학적 정의가 아닌-에 의거한 자신의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에서 유의미성의 근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굳이 소칼까지 가지 않더라도 과학 용어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예를 체험한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광속도가 서로 다른 관성계 사이의 상대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상수값을 가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아인슈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저자가 자신의 마음의 눈을 열고 보았다는 여분의 차원과 그 것의 사회정의적 입장에 대한 그의 철학적 분석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과연 그가 무엇을 본 것일까?)
나는 과학의 성공의 기저에는 논리성과 엄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논리적이고 엄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이 위배된다는 것을 지적할 마음이 전혀 없고, 실수로 약간 태운 닭가슴살이 의외로 맛이 있었던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문에는 'it makes sense'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문의 추구는 결국 학문의 대상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기본적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규칙이 너무 쉽게 무시되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
리자는 최근 물리학의 발전에서 어떻게 extra dimension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것이 구체적인 입자물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게 되었는지 등을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현대 미술 ..]의 저자는 사실 현대 미술에서도 extra dimension과 상대성 이론이 나타나며 시각적 인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종교..]의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다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는 것이 현대 종교 논쟁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팩터임을 말하면서, 사실 자기는 우주의 존재 자체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했다. 음..솔직히 말해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받은 인상을 토대로 그들이 했던 혹은 했음직한 말들을 위에 나열해 보았다. (혹시 두 책 중 한 권 혹은 두 권 모두를 읽어보신 분이 계시면 내용을 상기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받은 인상이 바로 이거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예를 들어, 리자가 언급한 extra dimension은 매우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다. 입자가 운동량을 가지고 그 방향의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차원이다. 더 나아가 크기와 위상학적 구조에 의해 각기 다른 물리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구조를 파악할 수도 있을 (물론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원리적으로 관측 가능한) 그러한 물리적 실체이다. 그리고 그 대상의 성질에 대한 언급들은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수학적 정합성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만약 논리성과 정합성을 잃게 된다면 그 언급은 틀렸거나, 아니면 적어도 과학적 지식의 범주에 속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기본적 모랄이다.
하지만 [현대 미술..]의 저자나, 아인슈타인에 대한 완전한 오해에 바탕을 둔 언급을 한 [종교..]의 저자는 extra dimension과 relativity가 주는 감성적 인상 - 적어도 논리적, 수학적 정의가 아닌-에 의거한 자신의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에서 유의미성의 근거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굳이 소칼까지 가지 않더라도 과학 용어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예를 체험한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광속도가 서로 다른 관성계 사이의 상대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상수값을 가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아인슈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저자가 자신의 마음의 눈을 열고 보았다는 여분의 차원과 그 것의 사회정의적 입장에 대한 그의 철학적 분석이 얼마나 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과연 그가 무엇을 본 것일까?)
나는 과학의 성공의 기저에는 논리성과 엄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논리적이고 엄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이 위배된다는 것을 지적할 마음이 전혀 없고, 실수로 약간 태운 닭가슴살이 의외로 맛이 있었던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문에는 'it makes sense'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학문의 추구는 결국 학문의 대상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기본적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규칙이 너무 쉽게 무시되기도 한다는 것이 현실인 듯 하다.





덧글
kritiker 2006/03/16 13:53 # 답글
하이젠베르크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정확히는 잘;;). 에릭 홉스봄 영감님도 '극단의 시대' 후반부에서 과학 영역을 언급했었는데 자칫하단 인문학에서 과학을 쉽게 형해화시켜 넘겨버리기 쉬운 그 부분에 어느 정도 제약을 두는 것 같더라구요.
nina 2006/03/16 13:54 # 답글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taoism)에는 상대성원리가, 주역에는 양자역학이 담겨있다.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그런 개념들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라는 대단히 진지한 동양철학자들의 주장도 있는걸요. 그러니 그 정도는 애교로 봐 줄수 있을꺼에요.(사실 이런 건.. 자신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남들을 의식하여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양'과 다르지 않으니.)그런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그들은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사실 왠만큼 이해할 수 있으므로, 특별히 신랄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서두.
순진한 사람들은 저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때문에 그 점이 문제인 듯 해요.
저만해두, 예전에, 혹시나 해서 주역을 구해서 읽었다는 거 아녜요. -_-;;;;;
ExtraD 2006/03/17 05:57 # 답글
kritiker님, 논리적이고 말이되는 접근을 하는데 있어서 누구라도 자연과학의 개념과 사실들을 이용할 수 있겠고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홉스봄이나 하이젠베르크의 언급은 그렇지 못한 경우, 그러니까 오개념, 비약, 어이없는 해석 등을 경고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traD 2006/03/17 06:02 # 답글
nina님, 하하! 저는 노자를 읽었답니다. (아쉽게 상대성원리와의 관련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저는 말씀하신 동양학자들의 시도중 일부는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쿼크의 SU(3) 애드조인트 표현인 8이 불교의 팔정도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그 이론의 창시자인 머레이 겔만이 퍼뜨렸고, 거기에 일부 동양학자들이 ..말하자면 낚였다..는 인상을 받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