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키워드 순위: 초끈 이론 vs 초끈이론 물리 이야기

지난주 검색 키워드는 당혹스런, 그리고 절대 이해 불가능한 검색어로 이 블로그를 찾아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내용은 비밀입니다.)

이번 주 검색 키워드 순위를 보니 대부분 물리학과 관련된 키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뭔가 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순위를 보면 1위와 20위가 같은 검색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끈 이론 혹은 초끈이론은 우리 세상의 모든 물질과 힘의 근원이 아주 작은 끈의 진동이라고 주장하는 현대 물리학의 이론이고, 시공간의 차원이 11차원이며, 초대칭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대칭성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우리는 공간으로 세 방향 말고는 움직일 방향이 없고, 또 초대칭이라는 걸 몰라도 요리를 한다거나 음악을 듣는 다거나 심지어는 공학을 공부하는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끈 따위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음이 명백합니다. 왜 파리 시민인 알제리 출신자들이 갑자기 방화 사건을 일으켰는지, 왜 멀쩡하게 차 타고 출근한 공화당 당원들은 전자투표기에 자신의 눈이 충분히 복잡하니 누군가 자기 눈을 특별 설계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고 투표를 했는지, 왜 목성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찍기 위한 리모컨 조정식 자동차를 보내는데 그토록 엄청난 돈을 퍼부으면서 단돈 몇만 원에도 죽지 않았을 아프리카의 난민촌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지..., 초끈 이론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으니까요.

학교에서 수학을 젤 잘한다는 녀석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연구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시공간이 11차원이라느니, 우리가 사실은 3차원 막 속에 갇혀서 살고 있다느니, 엄청난 에너지로 입자들을 충돌시켜서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그마한 블랙홀이 보일 수도 있다느니 한다는 게 어찌 보면 우습기까지 합니다. MLB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건장하고, 빠르고, 힘이 센, 한 가정의 가장들이 수 십명 모여서 조그마한 가죽 장갑을 끼고, 풀 같은 게 잔뜩 든 하얀 공을 너무나 정성껏 100마일로 가로세로 30센티의 공간에 던지고, 또 길쭉하게 생긴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로 그것을 힘차게 쳐서 담장 밖으로 넘기려고 애를 쓰는 모습들이 생각납니다. 이 모습이 가끔은 멋지다고 까지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마 외계인들이 보면 상당히 웃기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초끈 이론은, 물리학은 왜 하는 걸까?


어떻게 기초 물리학을 연구하는데 국가가, 대학이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돈을 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주가 11차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장비를 구입해서 이러저러한 실험을 해야한다고 말하면 누군가 "그래 난 어릴적 부터 우주가 4차원 이라는 게 맘에 들지 않았어. 하필 4라는 불길한 숫자라니! 어서 실험을 해서 행운의 7개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해 주게"라고 말하며 선뜻 그의 전 재산을 기부해 줄 수 있을까요?

다행히 저는 이런 고민을 거의 한 적이 없이 지금까지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해 왔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적절한 성적을 받아 대학에서 원하는 분야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에서 적절한 성적을 받아 학위를 마칠 수 있었고, 적절한 주제들에 대해 내 생각이 담긴 논문들을 써서 원하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테뉴어를 받지 못했으니, 어떤 계기로 인해 전혀 다른 분야 (혹은 살짝 다른 분야 ^^ )에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까지 펀딩 에이젼트를 대상으로 연구비를 딸 때에도 그냥 논문 목록과 연구 계획서 작성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그냥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여실해지는 순수 기초 학문분야에 대한 분위기는 이것을 낙관할 수만은 없게 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만 제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God Particle]의 저자이자 198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Leon Lederman 교수가 한국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기초 학문분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 감소와 특히 초전도 초충돌 장치( Superconducting Supercollider) 계획이 의회에서 취소된 사태를 어떻게 보냐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레더만 교수의 답은 자신의 세대는 다행히 그러한 어려움을 몰랐고, 누구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정부나 군대(그렇습니다. 미 군부를 말하는 겁니다!)로 부터 연구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덕분에 20세기 중반 이후 큰 진보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한 끝에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 원하는 만큼의 연구 지원을 받게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문제 인식도 없었기에 그의 encouragement에 힘차게 손뼉를 치며 좋아했었습니다. "저 정도의 사람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면 정부도 당연히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열 여덟짜리 다운 생각을 한 것입니다.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Brian Greene의 [Elegant Universe]가 베스트셀러가 된 지도 한 참이 되었고,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을 하는 친구들도 초끈이론에 대해 그리고 그 이론이 말해주는 우주의 묘사에 매료되었다는 것을 목격하지만 여전히 그런데도, 기초과학을 위해 사회가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100% 이해하기는 힘든 것 같으니까요.

어떠신가요? 우리가 정말로 11차원에 살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우리 우주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우아하고, 거대한 이론을 찾으려는 사냥꾼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으신가요?

덧글

  • amis 2005/11/17 08:59 # 답글

    저는 그 검색어가 뭔지 알지요~~~~ 물리학은 잘 모르니까 패스하지만, 언젠간 깊이있는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봐요 :)
  • 바죠 2005/11/17 09:19 # 답글

    좀더 많은 글들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elegant universe같은 프로그램말입니다. 남에게 알리지 못하면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최소한 남들이 알아는 들어야 중요하다는것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연구비 걱정 안할 수 없습니다.
  • ExtraD 2005/11/17 10:00 # 답글

    amis: 그 검색어는 영원히 망각 속으로 ~~

    바죠: 맞습니다. 비단 연구비 걱정만 아니더라도 그런 노력은 정말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자가 하는 영화 얘기가 아니라 물리학자가 하는 물리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 초록불 2005/11/17 10:42 # 답글

    인문학도 마찬가지 고민을 합니다. 대체 기원전 천년 전에 사람들이 뭘 해먹고 살았는지를 알아낸다거나, 고려 사람들의 행정 조직도 따위를 알아낸다고 한들 그것을 뭐에 써먹을 것이냐? 또는 고구려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뭐라고 발음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 당장 눈 앞에 이익이 떨어지는 일을 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은가? 과학은 그야말로 거기에서 뭔가 실용적인 어떤 것이 도출될지도 모르지만, 역사학에는 그 무엇이 있는가? 지적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케케묵은 옛날 일을 들춰보는 것에 돈을 왜 써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돈 지원받기는 이쪽이 백만배쯤 어려울지도...-_-;;
  • ExtraD 2005/11/17 11:31 # 답글

    미국은 잘 모르겠고, 한국의 인문학은 아주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상당수가 고시니 뭐니해서 엉뚱한 길로 가지만 정작 그것을 돌이킬 유인을 제공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구요. 인문학이 없는 사회를 저는 '천박한 사회'라 부르겠습니다. 한국이 천박한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 urbino 2005/11/17 12:57 # 답글

    사실 술 마시며 친구들과 도대체 기초과학이 뭐가 위기라는 거냐. 인문학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러면서 불평했던 때가 생각나요. 언뜻 역사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어떤 직접적인 富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만드는 조그만 선택에서, 국가가 결정하는 거대한 선택에까지 과거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 속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게 되는 거죠. 물론 이것은 역사 연구의 실리적 차원만을 강조한 이야기에 그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정신이 없는 경제나, 정신이 없는 과학은 매우 이기적이고 천박해 진다는 것을 아직 우리 사회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초끈 이론에 대해서 오늘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론이 떠오르네요. 모든 물질과 힘의 근원이 작은 진동에서 시작되는 초끈 이론과,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타자와 나의 인연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불교적 담론과도 연관되는 것 같아요.
  • ExtraD 2005/11/17 13:44 # 답글

    urbino: 초끈 이론과 연기론이 닮은 점이 있다는 건 아주 색다른 말씀이시네요. 대응 관계가 "초끈의 진동<->모든 물질과 힘" 이라는 것과 "인연-> 모든 사건" 이라는 거죠? 재밌네요.

    그런데 "끈"은 physical entity로 물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인연"은 물질적이라기 보다는 causality 라는 어떤 원칙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초끈 이론을 비롯한 현대 물리학에서 causality는 깨지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니 세계를 보는 관점 자체에 유사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 ExtraD 2005/11/17 13:54 # 답글

    그리고

    "학문이 밥먹여 주냐?"라는 입장과 "밥만 먹고 사냐?" 라는 입장의 차이가 있고, 사실 둘 다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쪽이 100% 옳으냐를 묻는 건 아무런 포인트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어느 선에서 합의를 이루느냐가 포인트이고, 이 합의의 포인트를 찾는 것은 사회적 가치기준에 의해서 결정이 되겠지요. 밥만 먹고 살 것이냐,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살 것이냐,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살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책도 보기를 원하는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 amis 2005/11/18 00:29 # 답글

    적어도 미국에서는 학문이 밥먹여 주더군요.
  • ExtraD 2005/11/18 00:39 # 답글

    amis: 계속 그러해야 할텐데요..
  • 배정원 2008/08/10 00:14 # 삭제 답글

    저도 과학좋아하는데요. 눈에 보이지않는거 해봤자 저는 성취감이.....

    그래서 제가 화학분야 전공을 하려고하고(뭐 분자도 요즘껀보이지만)

    탐정이나 형사의길로 들어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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