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발전의 논리: 끈이론의 과학성 물리 이야기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을 처음 가진 건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연찮게 지금은 누가 썼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 과학철학 입문서적을 읽었는데 거기에 자극받아 포퍼, 쿤, 파이어아벤트, 라카토스, 콰인 등을 읽었다.

그리고 철학과 이명현 교수의 실재론/반실재론 대립구도로써의 과학철학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수업을 통해 '과학의 성공' 혹은 '과학 발전'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두가지 관점으로써 과학이 실재를 설명하기 때문이라는 설과 도구론적 성공만을 인정하는 관점을 대별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일반 서양철학사의 흐름속에서 성공적으로 기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진영 사이의 매우 미묘한 논쟁을 라카토스 편집 [과학 철학 논쟁] 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결국 두 관점은 소박 실재론에서 세련 실재론으로 또 소박 반실재론에서 세련 반실재론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둘 다 일리 있단 얘기다.

그런데 실재론이건 반실재론이건 과학의 성공을 이해함에 있어서 소위 실험으로 대별되는 현상과 해석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철학이 자연과학 발전에 이바지 하지 못했고 또 못하는 이유는 철학이 틀려서가 아니라 실험을 하지 않아서라는 해석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뉴턴의 역학체계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운동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결과라기 보다는 실제 자연에서 벌어지는 운동에 대한 통찰과 수학적 정식화를 통해 이루어 졌다는 것이며 만유인력에 의한 행성운동의 이해는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케플러의 실제 행성운동에 대한 관찰결과로부터 중력에 대한 정식화가 가능했던 것이지 플라톤적 완전체로써 행성궤도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부터 기인하지 않았다는 해석은 매우 설득력있다.

끈이론은 이런 과학철학적 견지에서 보건데 매우 독특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현재 끈이론계에서 현상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 하는 사조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주류가 아니다. 16개의 supercharge를 가지는 초대칭성이나 10개의 공간차원 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연의 모습과 다르다. 그리고 엄연히 자연의 모습과 다른 이론 체계의 수학적 추구는 어찌보면 5개의 정다면체로 별들의 움직임을 기술해 보려했던 후기 천동설과 비슷하게 조차 보인다. 그리고 일단 천동설을 토대로 수없이 많은 에피사이클을 그려대던 노력들도 현재의 끈이론을 토대로한 혹은 끈이론에서 inspired 된 현상론 연구자들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과연 실험없는 이론적 노력만으로 끈이론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틀리지 조차 않은 이론" 끈이론의 앞날에 어떤 빛이 쪼여질지 일단 2007년을 기다려본다.

덧글

  • 한미혜 2008/03/26 05:15 # 답글

    재미있는 글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지지난 수업시간에 뉴턴의 '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다루었었는데, 뉴턴과 케플러의 관계를 더 파고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어쩌다 보니 Lee Smolin의 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2006)의 한국어판을 만들게 되었는데, 아마 관심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함께 얘기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
  • ExtraD 2008/03/26 08:07 # 답글

    한미혜님,

    루이님께서 번역하신 스몰린의 책도 알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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